
4월 1일
경술년 4월 초하루가 밝았다. 울산부사로 일한 지도 벌써 1년이다. 작년에는 농사가 좋지 못했다. 태풍과 홍수가 논밭을 할퀴고 집어삼키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렇긴 하여도 검재리檢災吏가 농사 형편을 과장되게 낮게 보고하여 사사로이 국가에 낼 전총田總을 줄이도록 한 것은 크게 꾸짖어 바로잡았다. 지역민이 세를 적게 내도록 숫자를 조작한다면 지역민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을 것이지만 관리가 편법을 익히면 그것이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거두어야 한다. 공평이 우선이다. 울산으로 내려오기 전 조정에 하직 숙배할 때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암송하고 결의하지 않았던가.
환갑이 되니 매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십간십이지를 모두 쓰고 처음으로 돌아간 까닭이다. 지역 관리들과 유지들이 마련해준 회갑연에서 백성의 말을 더 잘 듣는 관리가 되리라 덕담했었다. 공자가 이순耳順이면 귀가 온순해져 세상의 모든 일을 편안하게 듣게 되는 나이라 했던 것을 인용했다. 하지만 어찌 다가올 일을 장담하겠는가. 언제까지 관리로 일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면서 공연히 위세를 부린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인생이 70이라 하니, 이제 내게도 강산이 바뀌는 일을 볼 기회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급제하여 나랏일을 하는 아들 둘이 제 아비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왔었다. 특히 넷째 약용은 내가 울산으로 오기 직전에 급제하여 아비를 기쁘게 하였다. 대화하면 할수록 그 학문 된 깊이와 이해가 출중하여 과히 모자람을 느낄 여지가 없다. 돌아가는 날 저녁에 목민관으로서의 덕목이나 철학에 대해 그간 경험한 일을 비추어 말해 달라 하였는데 그 진지한 태도와 깊음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 놀랍기도 하였다. 제 아비를 따라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경황없이 공부하였음에도 능력이 발휘되었으니, 이것이 청출어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기는 둘째 약전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장하고 고마운 일이다. 자식 농사를 나름 잘 일구었으니 조상님 안전에 한 가지 임무는 마친 셈이다. 환갑이 되어 착잡할 것 같았으나 이런 일들을 생각하니 새로운 의욕이 생겨난다.
울산은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이라 했다. 땅은 바닷가이고 홍수와 가뭄, 벌레와 태풍의 재해가 자주 겹치고 풍속이 또한 온화하지 못하다. 기근이 들고 관리들이 관청의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는 통에 거처를 잃고 떠도는 자가 최근 몇 년 사이 극에 이르렀다. 울산은 본디 왜구가 빈번하게 침탈하던 곳이라 일찍이 경상좌병영이 설치되어 경계를 삼엄히 하고 있다. 이러하니 군사를 정비하고 병영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소나무를 보전하고 목재를 확보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임무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헐뜯음과 책망이 사방에서 이르기 때문에 관리가 1년에 한 번 바뀌고 어떤 경우에는 1년에 두세 번 바뀌어서 1년을 넘기는 일이 드물었다 한다. 지난 5년 사이에 환영하고 전송한 관리가 모두 8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이런 까닭에 조정에서도 울산 지역 관리의 선임을 어렵게 여기고 신중하게 한다고 승정원 관료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울산이 원래 다스리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말도 그리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른 것이니 이런 소문이 생겨나게 된 것은 관리된 자들의 책임도 크다. 부임하여 민원을 들어보니 가뜩이나 생계가 어려운데 관이 환곡還穀제도를 수탈에 가깝도록 변질되게 운영하여 견디기 힘들 정도라 하였다. 당장에 법이 정한 대로 바르게 빌려주고 갚도록 명령하고 꼼꼼히 확인하였더니 사람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올봄에도 종자를 충분히 보급했다. 가을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향리들의 말로는 이처럼 질서가 잘 지켜지면 설사 흉년이라고 해도 민심이 관아의 뜻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니 빈말이 아닐 것이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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