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밀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나는 그러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동생이 스스로 물로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아무렴 그 여인이 스스로 물로 뛰어들었다 하여도 어찌 구원하지 않고 도망쳐 자리를 떠났느냐 말이다. 너는 그 자리를 도망쳐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지만, 네 말이 타당하다고 느낄 사람이 있겠느냐?"
오랏줄에 묶여 몸통이 구부러진 채였지만 체구가 건장하여 꿇어앉았음에도 전혀 제압당한 느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압당한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달아난 이유를 변명해야 할 부분에 이를 때면 갑자기 방향을 잃고 횡설수설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것은 소인이 듣기에…, 내 여동생이…, 죽어야겠다고…, 한사코 죽어야겠다고 말하였지요. 우리는 남매이지요, 남매, 어릴 때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어릴 때 남매니 지금도 남매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파란 보자기를 잘 살펴보라 말하더이다. 여동생이, 내 여동생이…."
뱃사공이 관아까지 오는 도중에 들었다던 혼잣말이 이와 같았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동생을 밀치지 않았으며 동생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라는 말은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 외의 말들은 뒤죽박죽이었다. 형방이 윽박지르며 당장에 매질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그러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아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매질하여 자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중대한 사건일수록 지방관이 할 일이 있고 중앙에서 할 일이 있다. 나는 자백이 아니라 증거를 찾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은 증거를 확보하고 보고하는 일이다. 심문과 판결은 중앙에서 하리라.
견성민의 말은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핵심을 잃고 주변을 겉돌았다. 심지어 배에 남겨졌던 물건들의 숫자와 크기를 과장되게 부풀려 말하기도 했다. 시간의 경과로 보면 어느 20대 중반의 건장한 젊은이가 멀쩡히 걸어 들어왔다가 포박을 당하자 갑자기 실성한 사람이 된 꼴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뒤죽박죽이 된 것은 포박당하여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 드러난 것뿐이었다. 그 표정과 행동, 그리고 아마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 함께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건대 견성민은 적어도 무지하고 극악무도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고 예의범절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심경의 변화가 커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법문에도 이와 비슷한 증상이 나와 있다. 죄책감이 극에 달하여 언변과 인지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이 약하고 조심성 많은 사람일수록 그리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온 사람들은 견성민의 가족들과 친지들이라고 이방이 알려주었다. 나는 참관을 허락했다. 이방은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만류하였지만 지금 견성민의 상태로 볼 때 다그친다고 단서가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를 잘 알고 있는 가족들에게서 오히려 의외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왔을 때 이들의 용모에서 풍기는 어떤 과장된 자존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 상태를 잘 아는 이유는 내가 그러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았던 까닭이다. 지금이야 환갑이 되어 여러 경험으로 말미암아 극복하였지만, 젊었을 때는 향리들과 지역 유지들이 내가 과거를 보지 않고 지방관리가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왠지 이전과 달리 업신여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사실을 인정하고 주어진 책무에 몰두하면 되었을 일인데, 단지 생각의 차이일 뿐인데, 그것을 마음에 담고 살았었다. 이들에게서 나의 그 젊은 시절의 오류들이 투영되어 보였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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