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인 사람들도 물건들을 유심히 보았다. 어깨너머로 고개를 내민 사람 여럿이 그보다 뒤에 있는 사람을 위해 물건의 이름을 각각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죽기 위해 배에 오른 여인이 흰 모시 베 다섯 자, 다리 채 세 가닥, 겹저고리 한 벌, 해진 버선 한 켤레와 같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구태여 가져온 까닭이 무엇이란 말이냐? 누군가 자기 죽음을 알아봐 주도록 남겼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당사자인 네가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유품을 품에 안고 물로 뛰어들지 않고 배에 남긴 이유는 네가 그것을 잘 간직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겠느냐? 그런데 너는 그렇게 중요한 자살자의 유품을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달아났다. 네가 생각하여도 네 동생이 남긴 유품이 아무한테나 발견되어도 상관없다고는 말하지 못하리라!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파란 보자기에 싸인 돈 30문이다. 죽고자 하는 이가 돈을 왜 가지고 왔을까 말이다. 그리고 너는 시종일관 그 파란 보자기를 잘 살펴 달라고 하였는데 돈 외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대체 네가 잘 살펴달라는 것이 무엇이냐? 돈이냐, 아니면 보자기 자체냐?"
형방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제지했다. 나는 진부를 다시 불렀다.
"어제 아침 자네가 목격하여 고발한 내용을 처음처럼 다시 한 번 말해 보시게."
문순삼이 앞으로 나와 견성민을 내려 보며 말했다.
"이 사람은 어제 검은 삿갓을 쓰고 한 아낙과 함께 배에 올라 사공도 없이 노를 저어 강을 건너갔습니다. 저는 괴이하다 생각되어 먹던 밥상을 밀치고 나루터로 걸어가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습니다. 가던 배가 강 한가운데 이르러 갑자기 아낙이 물로 뛰어들었는데 소인이 본 바로 그것은 아낙이 실수로 뛰어든 것이 아니라 아낙이 반대편에서 남자 쪽으로 다가왔을 때 이를 밀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는 아낙을 구원치 아니하고 즉시 노를 저어 강 건너편으로 달아났습니다."
"자네는 여인이 물에 빠진 곳을 알고 즉시 배를 타고 현장으로 갔음에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어떤 까닭인가?"
"즉시 다른 배를 타고 갔으나 일곱 길丈 물속으로 빠진 아낙을 구원할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결국 물 밖에서는 찾지 못하였고 멀리 떠내려온 후에야 다른 사공이 발견한 줄로 압니다."
"견성민은 들었는가? 진부의 증언에 거짓이 있다면 말해보라."
"아니오, 내가 밀친 것이 아니오. 동생이 한사코 배를 타야 한다고 주장하여 탔을 뿐이며 도중에 준비한 듯 갑자기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네 말인즉, 배를 탔을 때는 동생이 자살하려는지 알지 못했다는 말이로구나."
"그…, 그렇습니다. 배에 타고 가는 도중에 동생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말하기를, 실은 죽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하였습니다. 벗어놓은 버선은 무얼 뜻하겠습니까? 동생이 스스로 벗어 던지고 곧장 행동하였으므로 미처 잡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동생이 죽고자 하니 죽게 내버려두고 도망쳐 나왔던 게로구나?"
"경황이 없고 두려워 자리를 피했을 뿐이오."
"물에 빠진 동생이 혹시 마음이 바뀌어 살려달라 하는 말을 듣지는 못하였는가?"
진부에게 물에 빠진 여인이 살려달라는 고함을 들은 바 있느냐 물었으나 그는 너무 멀리에 있어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견성민은 뱃사공의 대답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대뜸 답했다.
"죽고자 하여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 말할 리 있겠습니까!"
"진부에게 묻겠네.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 고함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허우적대다 이내 물을 먹게 되고 그리하면 숨쉬기에 바빠 소리치기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저의 어릴 적 경험으로 말씀드리자면 정신이 없어 소리칠 생각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허나 그런 위급한 상황에 요행히 물 밖으로 머리가 나온다면 누구라도 반드시 소리쳐 구원을 요청할 것 같사옵니다."
"나는 정녕코 살려달라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소!"
견성민이 거듭 부인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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