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한 가운데 이번에는 청색이 호사스러운 도포 자락 차림의 젊은이를 필두로 새로이 예닐곱 사람이 관아로 들어왔다. 본인을 죽은 여인의 남편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곽임택이었다. 형방이 그를 데리고 시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자는 괘씸하게도 볼일이 끝났다는 듯 휑하니 되돌아 나가려 하였다. 나는 포졸에게 가까이 대령하라고 명령했다.
"자네는 남편이라 하면서 어찌 부인이 죽었음에도 이리 늦게 나타났는가?"
"사또,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죽은 여인은 전에는 저의 처였으나 지금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집에서 혼인을 무효로 하고 본가로 되돌려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신을 장례 치를 권리도,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남이니까요. 다만 얼굴을 확인해 달라 하여 그리하였을 뿐입니다."
"아무렴 3년을 같이 산 사람인데 어찌 그리 야박하고 무정하단 말인가.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 내쳤다손 쳐도 얼마 전까지 살을 맞대고 살던 사람이 죽었음인데."
"저 또한 측은하게 생각함이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 처지가 되어 보면 왜 처가 죽었음에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무덤덤한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그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처가댁 식구이며 포승줄에 묶여 무릎 꿇린 자가 처남임을 알아보았다. 장인과 장모를 향해 목례했는데 마치 그럴 마음은 없으나 최소한의 격식을 드린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 상황이 전혀 짐작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쫓아서 친정으로 보낸 부인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체를 확인하라는 관원의 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슬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으로 내쳤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제 완전히 남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이고 며느리이니 시체를 거두어 가라는 말로 들렸던 것이다. 일말의 잔정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죽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신의 얼굴을 꼭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곽임택이 마침내 시신을 확인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죽은 전처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시신이 관아에 있다는 말에 시신의 뒤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본인과 무관하니 시체를 확인한 후에는 그녀의 친정에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려고 작정하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처가댁 식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제 처는 저와 재혼하였습니다. 여인이 재혼하였음은 자고로 허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온 이후 겸손하고 다정하기는커녕 심히 게으르고 사치하며 며느리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웃한 부인들과 어울려 음탕한 이야기를 예사롭게 주고받다 발각되어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일이 여러 차례입니다. 가장 심한 것은 제 어머니와의 갈등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말대꾸하는 것은 고사하고 시집살이에 일찍 죽게 생겼다고 억지 소문을 퍼뜨려 어머니가 몸져 눕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잘했느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부부관계가 소원함을 온갖 핑계를 덮어 씌어 사방에 험담하고 다니며 남편을 욕되게 하니 대저 부인인지 원수인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저의 집안은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반듯한 가문입니다. 재혼하여 들어온 며느리를 내칠 때는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개과천선을 바라며 오랫동안 기회를 주고 참아왔습니다. 3년을 그리하였으니까요."
그는 주위를 살폈다. 본인이 할 말은 다 하였고 이제 그 시신의 처리는 처가에서 알아서 하시라고 말하곤 퇴장하는 일만 남았다는 눈치였다.
"자네의 말이 지어내거나 심히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여기 함께 온 우리 마을 친지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왕래하는 사이오니 이들에게 물어보시면 제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온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은 방금 곽임택이 죽은 견조이에 대하여 말한 내용에 거짓이나 과장됨이 없다고 자신하는가?"
"맹세코 그러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마을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계속)
#작가 소개 : 이호상 소설가
2014 『울산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홀동을 시작했고, 2019 소설집 『젊은 날의 우화』를 냈다. 울산소설가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울산문인협회 회원이다.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1730~1792)이 울산부사로 재임하던 1790년 실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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